일요일인 지난 4일 늦잠을 즐길 이른 아침. 서울백병원 흉부심장혈관외과 김용인(50) 교수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그가 향한 곳은 인천시 서구 백석동에 있는 ‘말구유 나눔회’ 무료진료소. 이곳은 매주 일요일 오전부터 자원봉사 의료진과 환자로 북새통을 이룬다. 병원비를 감당키 어려운 이주노동자나 불법 체류자를 무료로 치료해 주는 곳이다. 1978년 옛 용산시장 부근에서 활동을 시작한 나눔회는 지금까지 30년째 노숙자와 이주노동자 등 소외 계층에게 무료진료를 베풀고 있다.

이 모임 회장인 김 교수는 “처음엔 보람을 느끼기 위해 시작했지만 이젠 여기 나와 봉사하는 것이 습관처럼 돼 버렸다”고 말했다.

진료소에는 소문을 듣고 수도권 곳곳에서 환자들이 찾아왔다. 목이 아프고 혈압이 높다는 필리핀 노동자 마이클(42)씨는 김포에서 인천까지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에서는 검사 한 번에 몇 만원씩 내야 하므로 치료를 엄두도 내지 못한다”면서 “이렇게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니 그저 고마울 뿐”이라며 연방 고개를 숙였다.

20평 남짓한 진료소에는 변변한 의료 장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치료가 가능할까’라는 걱정이 들 정도다. 그러나 김 교수는 “여건이 안 돼 치료를 못한 경우는 없다”고 자신했다.

그의 자신감은 ‘회원의 힘’에서 나온다.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할 당시 모두 의대생이던 회원들이 지금은 대학병원 교수와 개원의 등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의사, 간호사 회원 35명 중 20여명이 20년 이상 활동해 온 장기 회원이다.

장비가 없어 치료가 어려운 때에는 회원들이 자기네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를 한다. 큰 수술이 필요할 경우에는 대형 병원과 연계하거나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활용해 치료하도록 해 준다.

회비로 운영되다 보니 늘 돈이 부족하지만 모두 초심(初心)을 잊지 않고 있다.

의대와 간호대 학생이 대부분인 신참 회원은 이런 선배들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강의실에선 배울 수 없는 봉사정신을 체득하고 있다.

안희선(가톨릭대 간호학과 3)씨는 “간단한 검사로 혈압만 쟀는데도 ‘건강이 괜찮은 거냐’고 물을 정도로 병원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이 많다”면서 “앞으로도 선배들처럼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평생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눔회 회원들은 올해는 전 세계의 의료 사각지대로 봉사활동 무대를 넓히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지난 1월 캄보디아 프놈펜의 베트남 난민촌으로 첫 해외 봉사를 갔다 왔고 오는 7월엔 파푸아뉴기니로 의료봉사를 떠날 예정이다.

김 교수는 “한국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도 어렵지만 후진국 빈민은 더욱 도움이 절실하다”며 “의료혜택이 미치지 않는 오지에 찾아가 30년 전 학생시절 꿈꿨던 의사의 모습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천=유덕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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