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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6-11-06 15:27
‘타자’ 로서만 존재하는 이주노동자
 글쓴이 : 경향신문
조회 : 2,257  
[인류학자가 보는 세상](15) ‘타자’ 로서만 존재하는 이주노동자

[경향신문 2006-11-03 16:21]



↑지난 5월 어린이날 행사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녀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이주와 인권에 관한 국제포럼에서 청중석에 앉아 있던 이주노동자 한명이 국제이주기구에서 일하는 발표자에게 한국 정부의 고용허가제가 갖는 문제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을 했다. 막힘 없는 한국어로 질문을 하던 이주노동자는 포럼이 끝난 후 한국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발표자들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얼굴 모습을 보지 않고 그분의 한국어 실력이나 한국사회의 쟁점에 대한 식견만 생각한다면 평생 한국에 산 시민운동가와 구별되지 않을 듯했다.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외국인 이주노동자는 이제 그 규모나 한국경제에 대한 공헌도,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성찰에 있어 우리사회의 일원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한때 42만여명에 달했던 이주노동자 규모는 작년 기준으로 약 33만명 정도가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독일, 베트남, 중동지역으로 노동자를 송출해 온 한국경제가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여야 하는 단계로 전환한 것은 한국경제의 발전뿐만 아니라 전지구화의 변화 속에 한국사회의 입지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노동이주를 하는 사람들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남미와 아프리카까지 확산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고 한국과의 교류도 미미했던 국가의 노동자들이 물 설고 낯선 한국으로 노동이주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결단이다. 누군가의 자녀이거나 부모요, 형제인 이주노동자들은 사랑하는 가족 및 친지와 헤어져 살 결심을 하고 상당한 비용을 마련해서 한국으로 오고 있다. 이들이 한국에서 힘들고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일하는 삶은 한 개인의 삶일 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친지의 삶도 담보되어 있다.


그러나 한 개인의 진지한 삶의 선택이자 실천인 노동이주는 국경을 넘는 현실적 절차와 법규로 인해 때로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한다. 또한 수용국 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이주노동자의 삶은 때로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난 10여년간 한국사회는 이주노동자들의 존재를 통해 감추고 싶거나 드러나지 않았던 많은 문제들을 성찰할 기회를 가졌다. 임금을 착취당하거나 욕설, 폭행과 같은 수많은 인권침해에 시달렸던 이주노동자들은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한국사회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하며 개선을 요구해왔다. 이들의 주장은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인종주의적 편견과 낮은 인권의식을 백일하에 드러냈다.


한국의 급격한 경제성장과 생활수준의 향상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비교의 준거로써 이주노동자들을 대하게 했다. 한국사회에서 늘 차별받고 어렵게 살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우월감에 이들에게 군림하는 모습도 보인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한국인 동료들은 늘 더 좋은 보수와 대우를 당연하게 요구하며 이주노동자들을 자신의 하인처럼 부리기도 한다. 일터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들은 자신들의 몫임을 일찌감치 알아차린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 동료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조사한 자료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경험하는 차별이나 인권침해 사례들이 즐비하다.


한국사회의 중산층 시민들은 다른 면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대하고 있다. 이들에게 이주노동자들은 배고팠던 젊은 시절의 고통과 역경을 이겨내고 오늘의 삶을 이룬 자신과 한국사회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비교의 준거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이주노동자를 소재로 했던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한편으로는 한국사회가 범했던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의 실체를 보여주고 시민의식의 개혁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주노동자를 불쌍히 여겨야 할 대상으로만 재현해 냄으로써 많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감상적 온정주의에 젖었던 사람들 역시 이주노동자를 자신들의 삶을 결정하고 실천하는 주체로 보지 못하고 타자화시키는 우를 범했다.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로 구성된 밴드인 ‘스탑크랙다운’의 한 멤버는 “우리를 불쌍히 보지만 말라”며 한국 사회의 온정주의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한국인들의 온정적인 태도나 차별적인 태도 모두가 이주노동자들을 ‘타자’로 구성해 내는 한국인의 관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사회가 자신들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주거나 불쌍히 여겨줄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낮은 임금을 받으며 묵묵히 힘들고 위험한 일을 감당하는 자신들이 한국사회에 공헌하는 것만큼 정당한 대우를 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온 것이 한 개인의 인격과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마저 멸시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의 눈에 비친 한국사회는 급격한 산업화와 서구화로 가족과 공동체의 가치가 무너져 이웃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삭막한 곳이다. 노숙하는 사람과 길에서 울고 있는 사람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한국인의 모습을 보면서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사회의 물질적 풍요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아해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글로벌 시대 한국사회의 자화상이 어떠한지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 인종과 민족에 대한 한국사회의 전근대적 편견이 얼마나 심각한지 자신들의 삶으로 증명해 낸다. 우리 곁에 함께 사는 이주노동자들은 우리의 욕망대로 내 모습을 확인시켜 주는 타자가 아니라, 글로벌 시대에 새롭게 재구성해 내야 할 공동체와 시민의식을 함께 모색해 내는 동반자이다.


〈한건수|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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