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아키노 가족
#고정수익없어도 한국남아…필리핀 말리따시티의 레드 아키노(21, 남)씨는 지난 2003년 한국행을 선택한 이주노동자다. 사실 그는 여느 필리핀인들이 꿈꾸듯 미국행을 원했지만 그가 속해있는 밴드부가 한국에 가게 됨에 따라 가게 됐다.
현지에서 한달 16~20만원을 벌었지만 한국에선 100~120만원의 수익을 얻는다고 한다. 하지만 고정 수익이 없는 듯했다.
이곳에서 해외이주를 하려면 2만5천~4만 페소(piso)가 든다. 키보드 연주를 했던 아키노는 업소를 전전하며 돈을 버는 듯하지만, 필리핀으로 돌아오고 싶은 생각은 없는 듯했다.

#여전히 한국행 원해…베트남의 첫 날 저녁을 먹으며 잠깐 만난 쿡(33, 여)씨는 지난 1997년 산업연수생으로 들어갔을 당시 월 30~40만원의 봉급을 받았다. 2005년 단속에 걸쳐 강제추방 당하기까지 4천만원을 저축했다. 사실 연수기간에 월급이 너무 적었고, 또한 기한이 끝난 이후엔 불법체류자로서 대전, 안양, 수원 등지로 이동하며 한달 70~90만원의 월급을 받고 일했다.
강제추방을 당했지만 벌어온 4천만원중 1천만원은 PC방을 차렸고, 3천만원은 땅과 집을 지어 세놓았다. PC방 한 달 순수입은 30만원 가량이지만 베트남 남자의 한달 수익보다 많다. 이곳에선 미모의 재력있는 여사장으로 통하지만 그녀의 마지막 꿈은 한국 남자와 결혼하는 것. 강제추방된 사람이 다시 한국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시 가고 싶다면 ‘관광’ 목적으로…1994년 산업연수생으로 봉제공장에서 일했던 전티탄 흥(32, 여). 그녀는 이곳 가구공장에서 한국 바이어를 상대로 가구를 팔고 있고 일반 남성보다 많은 수입을 보장받는다. 하지만 그녀의 한국 생활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산업연수생으로 갔던 첫 해 1년치 월급을 업주에게 고스란히 떼였다. 월급을 못받아 도망쳐 나왔고, 서울에서 불법체류 생활이 시작됐지만 몸이 안좋아 일을 할 수도 없었다. 그는 다른 동료방을 전전하며 이를 악물고 한국어공부를 했다. 그래서인지 흥의 한국어 실력은 대단했다.
그녀 역시 브로커에게 700불을 주고 한국에 왔지만 1년치 월급을 떼이는 바람에 이후 다른 공장에서 일한 후 갚았다고 한다. 한국으로 가게 된 동기도 엄마가 가라고 하고 오빠가 보냈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한국가는 유일한 방법은 고용허가제밖에 없지만 어려우므로 불법으로 가는 것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그녀는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고, 자세한 현황도 설명해주었다. 다시 한국에 가고 싶냐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노동이 아닌 ‘관광’을 위해 가고 싶을 뿐이라고.

▲트리가족과 우리 일행, 오른쪽 아래 아이를 안고 있는 이가 트리
#트리 가족…9년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갔던 마이의 남동생 트리(34)는 현재 호치민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유복하게 살고 있는 트리 가족은 한국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한국드라마 ‘풀하우스’ 등을 인상깊게 봤고, 트리의 누이 마이의 역할도 컸다. 트리의 딸은 유난히 예쁘게 생겨 실제 TV 드라마에 출연한 경력이 있다.
하지만 트리는 서점을 운영하는 것보다 한국행 이주노동을 선호한다. 서점을 운영해 고작 30~40만원(500~600만dong)의 수입을 얻는 것보다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100만원 이상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상관없다는 각오다. 하지만 한국행 이주노동을 위해서는 고용허가제가 요구하는 한국어시험을 봐야 하지만 한국어를 할 줄 모른다.

송출과정 수많은 액터(브로커) 개입

트리씨처럼 한국행을 원하지만 경로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 브로커를 통한 방법이다. 베트남 등에서는 송출과정에서 수많은 액터들이 개입하게 되는데, 그만큼 송출비용이 여러 경로를 거쳐 나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곧 비공식적인 송출비용이 높다는 아주 높다는 얘기다.

고용허가제에 따라 한국에 오려면 1년에 2번 있는 한국어시험을 치러야 한다. 매회 8천여명을 선발하지만 한국행을 원하는 사람은 그보다 많다. 한국어시험에 합격에 한국산업인력공단 리스트에 오르더라도 한국의 고용주가 1년간 선택하지 않으면 다시 한국어시험을 봐야 한다. 고용허가제하의 공식송출비용은 700불정도다(항공료, 여권, 비자, 출발전교육 포함).

‘베트남은 중개인의 나라’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처리에 있어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통해 이뤄진다. 이때 모든 곳에서 뒷돈이 거래된다. 여권발급, 건강검진, 비자발급 등 정부관리에 접근하는 모든 과정에 중개인이 개입한다. 비공식 루트가 너무 많기 때문에 송출비용 총액이 얼마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베트남 국민들 조차 매 단계마다 중개인을 통해야 한다는 것이 만연된 사고처럼 굳어졌다. 그들은 ‘내가 송출업체에 서류낸다고 내가 선택될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아는 사람이 없다면...’이라고 생각한다.

귀환노동자, 한국서 배운 기술 자국서 써먹나?

IOM 하노이사무소에 따르면 베트남 정부의 해외이주 노동은 단순히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국내 인력자원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한국 등으로 보냈다가 기술을 배우고 귀환한 노동자들이 베트남 경제의 주체로 많은 기여할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부보고서에서는 그들이 습득한 기술이나 작업태도 등으로 귀환노동자들의 취업이 아주 잘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이 만나거나 들은 이주노동 또는 귀환노동자들은 대부분 봉제공장이나 전자부품공장 등에서 단순 반복 노동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Ha, 30)씨 또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에서 일한 귀환노동자다. 한국에 가기 전엔 전기수리공으로 일했으며, 한국에선 CNC선반 자르는 일을 했다. 그럼, 귀환후에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그는 현재 작은 은행에 다니고 있다.

즉 한국에서 배운 기술과는 전혀 다른 직종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기술한 흥의 예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봉제공장에 다녔지만 여기서는 한국어 통역을 한다. 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필리핀이나 베트남 정부에서 알고 있는 것과는 다소 괴리감이 있다.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행을 선택한 것은 기술습득을 주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다수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이다. 그나마 자국에 와서 써먹을 수 있는 것은 ‘한국어’ 밖에 없다고 말하는 귀환노동자도 있었다. 그들의 특권은 한국어를 듣고 말할 수 있다는 우월감과 자신감이다.

▲홍푸가족이 우리에게 대접한 음식
#홍푸의 가족…대전 사전연수때 만났던 이주노동자 홍푸-리우 부부를 기억할 것이다. 그 중 홍푸의 가족을 만났다. 하노이에서 40㎞ 거리에 있는 하남이라는 곳엔 아버지 푹(71), 어머니 응옷(61), 그리고 6형제가 살고 있다. 홍푸가 낳은 아들도 여기에 있다.
홍푸의 가족은 홍푸가 한국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작년에 3천만원을 들여 4층 집을 지었다. 홍푸는 법과대학을 다니다 휴학하고 한국행을 택했다. 대학을 졸업해봐야 한달 200불을 벌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에 가면 700이상을 벌 수 있다는 부푼 꿈을 갖고 갔다고.
홍푸의 가족은 꽤 엘리트 집안이다. 아버지 푹은 예전에 군인 교관이었고 어머니는 은행원이었다. 형제들은 검사, 은행원 등으로 중상층에 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경제력 때문에 한국으로 일을 하러 가는 것은 우리나라의 엘리트들이 60~70년대 미국 유학을 가서 접시닦기, 청소부 등의 일을 하며 학비를 벌어 공부하고 귀국해서 교수 등에 채용됐던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해외 공동취재를 했던 현지 가정은 대부분 그나마 잘된 케이스가 많았다. 하지만 음지에서 차별받고 고통당한 이주노동자나 귀환노동자가 상당하다는 얘기 들었다. 한 예로 태국의 귀환노동자는 귀환후 처음 보는 한국인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다고 한다. 그런 후 한 한국인을 발견하고 해(害)하려고 했지만, 그가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란 걸 알고 그간 사정을 얘기했다고 한다. 필리핀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고 한다.

우리가 그들을 이방인, 열성(劣性)인으로 보는 한 그들에 대한 차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자국에서는 모두 잘난 사람들이고 건강하고 행복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을 ‘우리’로 맞이 하는 마음과 관심을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