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커지는 외국인 노동자의 불법 송금에 대한 우려가 번지고 있다. 본국의 가족에게 푼돈을 부치는 생계형 환치기를 넘어 마약과 테러,전화사기 등 범죄조직의 자금 통로나 중소 수출업체의 탈세 수단으로 악용되기 때문이다.

경찰과 국가정보원,금융정보분석원(FIU) 등은 한 해 최소 10억달러(약 1조원) 이상이 환치기상을 통해 국외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보고 외국인 노동자 밀집 지역의 환치기 조직을 적발하기 위해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위험한 불법 송금=지난 2일 경기도 안산 원곡동에서 만난 방글라데시인 H씨(36)는 최소 20여명의 자국 출신 송금 전문 브로커가 활약하고 있다고 밝혔다. H씨는 “비자가 없어 한국의 은행 계좌를 만들지 못하면 본국 송금을 위해 환치기상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면서 “외국인의 5% 정도는 전문 송금업자와 모집자로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환치기는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가 브로커 A에게 돈을 주면 A는 해외의 브로커 B에게 유선으로 연락,노동자의 가족에게 그 나라 화폐로 지급하는 거래를 말한다. 실제 국경을 넘는 외환 거래가 없어 송금수수료가 싸고 기간도 빨라 외국인 노동자의 불법 송금 수단으로 애용된다.

한국은행은 1년 미만 거주 외국인 노동자의 나라 밖 송금 액수가 2006년 1억4040만달러(1314억원)라고 밝혔다. 그러나 1년 이상 머문 노동자는 거주자로 취급되기에 따로 통계를 뽑지 않고 있다. 최소 10억달러 이상일 것이란 시중은행 외환관리 담당의 마케팅 보고서만 있는 실정이다.

◇탈세와 범죄 악용=서울경찰청 외사과는 5일 약 1년6개월간 400억원대 불법 송금 거래를 한 혐의(외국환거래법 위반)로 파키스탄 환치기 알선 조직 ‘마누르’의 조직책 M씨(35)를 구속하고 모집책 9명과 이들에게 수출대금을 맡긴 한국인 수출업자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마누르는 ‘빛나다’란 뜻의 아랍어로 파키스탄 카라치에 본부를 둔 국제 환전조직이다. 한국과 일본,두바이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동아시아와 중동 사이의 환치기와 자금세탁을 맡은 업체로 2005년 7월 M씨를 한국에 보내 영업하다 적발됐다.

경찰은 최근 기승을 부리는 중국계 전화사기 조직이 안산과 서울 가리봉 일대 중국계 환전상을 통해 본국으로 돈을 빼돌린 정황을 잡고 수사 중이다. 경기경찰청도 국정원의 협조를 받아 의정부 일대 방글라데시 환치기 조직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이미 300억원 규모의 거래를 주도한 조직책이 구속됐으며 국정원은 이 돈이 제3국을 거쳐 세탁된 정황을 잡고 테러 조직과의 연계 여부를 쫓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은행의 송금수수료가 지나치게 비싼 점이 불법 환치기상을 불러들이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3년 전부터 안산에서 합법 송금 대행 서비스를 하던 천주교 인권센터 갈릴레아는 1년 전 봉사를 중단했다. 최모(44) 국장은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 일부만 받아도 일요일 평균 1억원 넘는 돈이 모였지만 현지 은행 계좌로 합법 송금해도 사고가 많아 접게 됐다”며 “인도적 차원에서라도 국내 은행이 이주노동자의 송금수수료를 낮추는 등의 시스템을 고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