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중국 선양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서 민원인들이 비자를 받기 위해 서류를 준비하고 있다. 선양/정지윤기자

북·중 국경도시 단둥(丹東)에서 조그만 북한제 물품 판매점을 운영하는 이수철씨(32·가명)는 2년 전만 해도 인생에 한 줄기 희망도 깃들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도망자 신세였다. 그는 2002년 고향인 함북 회령을 떠나 두만강을 넘어 중국에 도착한 뒤 3년 동안 중국 각지를 떠돌며 유랑생활을 했다. 구걸은 물론 농사일, 식당 청소, 벽돌 공장 인부, 옷가게 점원 등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다. 돈을 제법 모아 장사를 한 적도 있다.

그러나 먹고 사는 문제와는 별개로 중국에서의 삶은 불안했다. 공안에게 쫓기거나, 붙잡혀 북송되는 꿈을 자주 꿨다. 온 몸이 땀에 젖어 새벽잠을 설치던 이씨는 한국행을 결심했다.

굶다 못해 고향과 가족을 버리고 탈북했지만 한국으로 가겠다는 생각을 가진 ‘정치범’이 되고 싶은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중국에 건너온 경우 체포돼 북한으로 끌려가더라도 한 달 정도 ‘교양학습’을 받으면 풀려난다. 하지만 한국행을 기도하다 발각되면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는 ‘어려운 결심’을 했다. 중국보다 훨씬 생활 수준이 높은 한국에서 합법적인 신분증을 갖고 쫓기는 신세를 면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다행히 한국행에 성공했다. 한국 국적도 얻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서울생활 3개월 만에 그는 자신감을 잃었다. 사기를 당해 정착금 일부를 잃었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탈북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허드렛일이라도 하려면 중국 동포라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

결국 1년 만에 중국으로 돌아왔다. 탈북자로 3년간 중국을 떠돈 경험이 있어 한국에 정착하는 것보다 쉬울 것 같았다. 이씨는 칭다오(靑島)와 다롄(大連)을 거쳐 단둥에 정착했다. 지금은 북한 보따리 장사치들이 갖고 오는 골동품과 기념품을 사들인 뒤 이를 관광객들에게 파는 장사를 하고 있다. 그는 “적은 돈으로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인 데다 의외로 한국 관광객들의 수요가 많다”면서 “다시 중국으로 온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씨처럼 한국행에 성공해 국적을 얻은 뒤 다시 중국으로 떠나는 탈북자들이 늘고 있다. 더 이상 한국을 ‘약속의 땅’으로 여기지 않는 탈북자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는 1만명을 넘어섰다. 탈북자들은 남북간 체제 경쟁이 극에 달한 1980년대 후반까지 ‘귀순용사’라는 칭호와 함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탈북자 숫자도 연간 10명에 못미쳤다.

그러나 90년대 북한의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이후 탈북자의 수가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한국행에 성공한 사람들도 99년에 처음으로 세자릿수를 돌파했다. 2002년에는 1000명을 넘어섰고, 2004년에는 사상 최다인 1894명을 기록했다.

탈북자가 흔해지면서 이들에 대한 대우도 달라졌다. 중국에 머물고 있는 탈북자들의 인권 문제가 국제적으로 관심을 받게 됐지만 정작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들에 대한 애정은 식었다. 자연히 탈북자들에 대한 인식도 차가워졌고 탈북자들은 국내에 정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하는 탈북자들이 늘어났다.

정착 초기 단계에서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혼란과 갈등을 겪는 탈북자들은 중국 생활을 그리워한다. 이는 한국에 오기 전에 상당 기간 중국에 머문 경험이 있어 한국보다 중국이 더 적응하기 쉬울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소식이 궁금해 중국으로 향하는 경우도 많다. 중국어를 어느 정도 익힌 데다 한국보다는 중국에 더 많은 인맥을 갖고 있어 중국 생활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 중국의 물가가 한국보다 훨씬 싸기 때문에 정부의 생계 지원비로 충분히 생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정작 중국으로 돌아간 탈북자들이 이씨처럼 안정된 사업을 하며 순조롭게 정착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양에서 북한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한국인 이모씨(50)는 “자본주의에 대한 학습이 불충분한 탈북자들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성공하기 어렵다”면서 “중국으로 돌아온 탈북자들이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으로 돌아온 탈북자들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합법적 신분이 됐다는 것뿐”이라면서 “과거 자신을 박대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과시하려는 경향도 강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탈북자들이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를 스스로의 힘으로 취업해 안정적 수입원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정부의 탈북자 정책이 자립 의지를 고취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지지 않고 정착금과 생계비를 지원하는 보호책에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정부의 탈북자 대책은 보호형 직접지원에서 자활을 유도하는 간접지원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며 “노동부 등 관계 부처와 협력해 효율적인 직업교육과 취업이 이뤄지도록 개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양·단둥|유신모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