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설고 낯 설은 이역만리 타국에서 심신이 지치고 아픈 것은 뼛속까지 서글픈 일이다. 더욱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타향살이라면 상처받기 십상이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이 땅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산업역군들이 그렇다. 사정이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아직도 수은주를 밑돌고 있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이들을 위해 손을 내민 사람이 있다. 대전 외국인노동자 무료진료센터 소장 김봉구(41) 목사.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두 팔 벌려 품을 내준 그의 이타적인 삶을 들여다봤다.

#1. 의술은 인술이다
무료진료센터는 그의 손으로 빚어낸 외국인 이주노동자 종합지원센터(외노센터)의 부설기관이다. 2002년 대전시 대덕구 대화동에 문을 연 외노센터는 무료진료센터 외에도 쉼터와 이주여성 인권센터, 필리핀 코피노 지원센터, 다문화아동센터 등으로 세포분열 했다. 그 중 무료진료센터는 2005년 1월 중구 은행동(동방마트 옆 태평양약국 3층)에 터를 잡고 외국인노동자들의 건강 지킴이로 성시를 이루고 있다.
“외노센터 개설 이후 뜻 있는 몇몇 의료진들과 함께 휴일을 이용해 신탄진 일대 사업장을 찾아 다녔습니다. 시간도, 돈도 여의치 않아 아파도 참는데 이골 난 이들을 위해 회진을 한 셈이죠. 원체 사업장이 흩어져 있다 보니 효과가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접근이 용이한 대전역 인근에 진료센터를 연 겁니다.”

처음에는 의료진을 확보하는 데 애를 먹었단다. 단내 나도록 발품을 판 끝에 5년이 훌쩍 지난 현재 200여명의 내로라하는 의사와 약사들이 휴일이면 당번제로 사랑의 의술을 펼치고 있다. 대전시 여약사회, 대전시 의사회·전공의 협의회, 대전시 한의사회, 건강사회 치과의사회 모두 고마운 분들이다. 특히 신현정 현대연합의원 원장, 임동진 치과, 두리한의원 한일수 원장 등은 원년 맴버들로 지금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고 있다. 충남대병원과 기독병원, 현대연합의원 등은 거의 무료로 수술을 집도하고 입원 치료를 담당해 주는 울타리다. 비록 공간은 협소해도 양방과 한방, 치과, 약국까지 겸비한 센터는 누군가에겐 일류 종합병원에 못지않다. 무엇보다 ‘인류愛’라는 고명을 듬뿍 얹어 소외된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주자들의 상처를 보듬어 준다.
“휴일을 반납한 채 선뜻 진료에 나서주는 의사 선생님들과 약을 처방해주는 약사 선생님들을 뵐 때마다 죄송하다는 마음이 듭니다. 돌아가시며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는 모습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죠.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하는 보람이면 그만이라고 하십니다. 의술은 인술이라고 하잖아요.”

#2. 개인과 사회는 공존하는 수레바퀴
김 목사가 외국인노동자와 결혼이민자들에게 관심을 쏟게 된 배경에는 종교적 신념이 깔려 있다. 개인과 사회는 수레바퀴처럼 공존하며 이를 중개하는 게 감리교의 전통이란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고민하던 중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받는 인간군(群)이 이른바 3D 업종에서 한국인을 대신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못 먹고 못 입고 살 때 석탄광산으로, 열사의 땅으로 품을 팔러 갔던 우리의 지나온 자화상을 그들에게서 읽었습니다. 위험하고 더러운 환경에서 피땀을 흘리고 있지만 보호막이라고는 한 자락도 없는 설움을 겪으면서도 하소연 한 마디조차 내 뱉을 비빌 언덕이 없는 그들이었죠.”
외노센터를 개소한 2002년이나 지금이나 여덟 해가 지나도록 달라지지 않은 것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무관심이다. 무료진료센터의 약값만 달에 100만 원인데 후원자들의 십시일반 정성이 모아지지 않았던들 간판은 진작 내렸어야 했다.

“물론 내국인들을 우선 돌봐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허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본다면 외국인노동자들에게도 최소한의 복지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글로벌 시대 ‘코리아’에 대한 잔상이 어떻게 표출되느냐는 국익과 직결되는 문제가 아닐까요. 더욱이 건강은 인권의 가장 기본입니다.”
매 주일 진료센터를 찾는 환자는 평균 50명 선이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간 20개국 4437명(5836건)을 진단하고 처방했다. 몰지각한 한국 남성의 후예, 코피노(필리핀에 버려진 한인 2세)를 돌보기 위한 센터를 현지에 설립하고 일 년에 두 세 번은 의료진과 함께 남겨진 자들의 멍울을 치유해준다.
“값싼 노동력을 부리고 폐건전지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비자가 만료됐다는 이유로 불법체류자라는 주홍글씨를 새기고 토끼몰이 하듯 쫓아내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들도 엄연히 세금을 냅니다. 노총각의 반려자로 아이를 낳아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지역 발전의 일익을 담당하는 이들에게 냉대와 차별이 말이나 됩니까.”

#3. 사회를 대신한 소박한 꿈
이 땅을 제2의 고향 삼아 살아가는 외국인들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대전만해도 현재 약 2만 명이며 해마다 20%식 늘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머지않아 외국인 400만 시대가 도래 하지만 이를 받아들일 준비는 전혀 돼 있지 않다는 게 김 목사의 한 숨으로 토해진다.
그에겐 두 가지 꿈이 있다. 정부 차원의 외국인 지원체계 구축과 외국인종합복지관 건립이 그것이다.
“결코 정부가 알아서 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지원체계 확립을 지속적으로 제안하고 있어요. 떳떳한 산업역군으로, 떳떳한 한국인으로 살 수 있도록 배려하자는 것이죠. 치료와 상담, 교육 등을 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종합복지관을 건립해 작지만 큰 꿈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외국인노동자와 결혼이민자의 영원한 친구이자 이웃에게 필요한 것은 아낌없는 박수와 우리 사회의 동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