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6-11-13 14:47

뭉치와 차분디르...

글쓴이 : 미디어오늘 조회 : 1,898

엄마의 퇴근을 말똥말똥한 눈으로 기다리는 두 딸을 보며 하루의 피로를 싹 잊곤 했던 16년 전. '기자인 엄마를 둔 이유'였을까? 두세살의 어린 두 딸들은 엄마와 많은 시간을 같이 하지 못했다. (참고로 이후 서 위원은 아들을 낳아 3남매의 엄마가 됐다.)

"솔직히 기사 쓰고 회사일에 바쁘다 보면 애들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랬는지 퇴근하고 힘들어도 애들과 시간을 같이 하려고 했죠."

양팔을 베고 누워 엄마의 동화를 듣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그렇게 이쁠 수가 없었다고. 도깨비가 등장할 때면 놀란 눈이 휘둥그래지며, 호랑이가 '어흥~' 할 때면 눈을 질끈 감는 아이들은 엄마의 동화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곤 했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짬뽕'되어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엄마의 동화를 듣다 잠이 들 때면, 서 위원도 어느새 '비몽사몽' 꿈나라 입구에 선다. 잘 나가던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 도깨비가 죽었다 살았다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쪽 다리를 잃은 용감한 병사가 물속에서 신기한 돌을 찾아 왜구를 물리친 이야기 뿐만 아니라 다람쥐가 벌목꾼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는 이야기 등등 온갖 이야기들로 매일 밤 동화속 나라를 여행했다.

"아이들이 무얼 좋아하는지 엄마는 본능적으로 알아요. 아이들이 동화를 들을 때 하는 눈짓, 손짓, 발짓에서 무언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거죠."

퇴근길 지하철 4호선은 특별하다. 아동문학계의 '밀리언셀러'인 뭉치시리즈의 '뭉치도깨비'가 탄생한 곳이기 때문이다. 늦은 저녁 퇴근시간, 덜컹거리는 지하철에서 만난 사람들의 풍경을 머리 속에 메모하며 이런저런 공상에 빠진다. 그러곤 이야기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춰가는 곳이었다.

"먼지뭉치, 사고뭉치라 하잖아요. 뭔가 골칫거리고, 심술 잔뜩 부릴 것 같은 존재. 하지만 친근하고 귀여운 이미지... 그래서 도깨비 방망이를 든 '뭉치도깨비'가 탄생하게 되었죠."

원고청탁을 받아 에피소드 형식의 짧은 동화를 쓰게 된 게 시작이다. 이후 '참 재밌다'라는 호평에 출판사의 제의로 94년 4월 '나야, 뭉치도깨비야'를 펴냈다. 서랍 속에서 낮잠을 자던 '게으름뱅이와 장난꾸러기'의 대명사인 '뭉치'와 꼬마주인공 보람이의 이야기다. 게으름 피우는 방법만 '전수'해주는 뭉치의 짓궂음이 귀엽다. 두 딸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들의 심리를 진솔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후 97년엔 두번째 뭉치이야기인 '뭐하니, 뭉치 도깨비야'를 펴냈다. 뭉치시리즈는 현재 30쇄를 찍었고 10만부가 팔렸을 정도로 인기가 여전하다.

"가르치고 교훈을 주려는 강박관념에서 현대아동문학의 문제점이 시작됩니다. 문학은 그 자체가 공감이 돼야 하고, 공감은 위로가 되어야 하는 거죠. 왜 시골은 항상 아름다워야만 하는지? 왜 어린이는 항상 착해야 하는지? 왜 서로 어울려 사는 것만이 옳은지? 등등. 매우 이성적이고 획일적인 거죠. 교육의 수단이 아닌 공감이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녀는 지난해 9월 '차분디르의 모험'을 펴냈다. 그녀의 말로는 제일 안 팔린 책이라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남다르다. 파키스탄 이주노동자의 딸인 마법소녀 차분디르와 외톨박이 소년 마루의 이야기다. 한국 내 이주노동자의 현실과 형제 없이 외롭게 커가는 아이들의 현실을 동화 속에 녹여낸 작품이다. 서로의 아픔과 고민을 이해하면서 두 어린이가 우정을 쌓아가는 내용의 동화다.

마법소녀 차분디르의 이름은 서 위원이 만들어낸 신조어다. 나중에 알고보니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절대신 '시바'의 아내인 '칼리'의 신당이 위치한 '차문디의 언덕'과 비슷한 어원이었다고.

'아름답고 이쁜' 동화만이 아닌 소수자의 이야기와 그들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는 동화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렇듯 그녀에겐 고집이 있다. 아집이 아닌 참 그럴법한 주장들이다. 그녀의 블로그(http://blog.hankooki.com/naticle)를 방문해보라. '대통령 지내면 다 국민장인가'에서부터 '머리, 샴푸로 감지 말자'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그녀가 발굴해내는 칼럼의 소재는 좌우의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광활하다. 언젠간 '애를 낳지 맙시다!'라는 칼럼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을 '들었다 놨다.'

그 중에서도 참 재밌게 읽은 글이 '연하장에 침 발라보기'다. 무슨 제목인가 싶어 읽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용인즉은 연말연시에 상투적으로 책상 위에 쌓이는 연하장들에서 시작된다. 만년필 사인이 하도 선명해서 침을 발라보니 인쇄였단다. 그 뒤로 항상 침을 발라본다는 서 위원. 상투적으로 '무차별 난사'하는 연하장의 각박함에 괴로워하다 색이 번지는 연하장을 만났을 때의 감동을 찾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권력이 없는 사람을 대신해 권력자에게 쓴 소리를 해야 하는 게 기잡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돼요." 그래서일까? 한국일보 지면의 '서화숙 칼럼'은 속 시원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솔직하고 직설적인 글로 이미 언론계에선 유명하지만, 냄새 잘 맡는 '후각형' 사회부 기자보다는 '분석형' 기자에 가깝다고. 어찌보면 기자가 적성이 아니란다. 그 말에 물었다.

"기자를 안 하셨다면 무슨 직업을 가지셨을까요?"

"사람에겐 양극단이 존재해요. 기자로서의 분석 욕구가 한쪽이었다면, 다른 한쪽은 아마 미적 욕구일 겁니다. 억압되어 있던 내면적 욕구이기도 하구요. 아마도 패션디자이너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동화작가로 데뷔한 지 만 12년이다. 팬클럽 독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어린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그녀. "선생님! 정말 도깨비 본 적 있어요?", "정말 경복궁 근처에 도깨비가 사나요?"라는 질문을 쏟아내며 그녀의 품에 달려들던 당시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흐뭇하다. 조숙해진 지금의 아이들에게선 느낄 수 없는 순수함이 그립단다.

독자의 편지에 미안할 정도로 감격해 살짝 눈물을 지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기자가 아닌 동화작가로서 '참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단다.

출판사의 세번째 뭉치이야기를 써 달라는 성화(?)에 '써야지 써야지'만 하고 있다는 그녀. 8년만의 '뭉치 3탄'... 기대가 된다.

얼마전 마당 넓은 집을 마련했다. 현재 심어져 있는 나무를 뽑고 과일나무를 심어 새단장을 준비 중인 그녀. 뽑은 나무를 가져갈 사람을 '모집'하고 있다. 빨리 손 들어 볼까?

이용호 연재작가 toon@mediatoday.co.kr

<저작권자(c)미디어오늘(www.mediatoday.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