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송출국 현지의 부실한 교육, 현지인들의 잘못된 환상, 국제 결혼 브로커들의 활개가 맞물리면서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필리핀 마닐라 현지에서 느낀 한국행에 대한 이주자들의 바람과 희망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그러나 맹목적 코리안 드림의 이면에는 거액의 ‘빚’이 수식어처럼 붙어 다닌다. 한국은 고용허가제를 시행한 2004년에 20만명의 필리핀인이 취업을 희망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선호 지역이었지만 1천명 미만만이 취업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불법 브로커들과 사기꾼들이 들끓을 수 밖에 없는 원인이 되고 있다.　

　노동부가 2005년 현지조사를 통해 내놓은 공식수수료는 필리핀이 400달러 안팎 수준이다. 그러나 공식이나 합법이라는 말보다 탈법, 불법, 비공식이라는 단어가 더 빠르고 현실적이다.

　필리핀은 20∼30대의 젊은 노동력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들을 충분히 먹여살릴만한 일자리가 없다. 이들은 오직 먹고 살기 위한 생존의 통로로 한국행을 택한다.

　실업 탈출도 문제지만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외국에서 목돈을 벌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대학을 졸업해도 한달 임금이 10∼20만원에 불과한 자국보다 최소 5배 이상의 임금을 더 받을 수 있는 한국이 인기인 이유다.

　이주노동자가 가장 많이 종사하고 있는 제조업의 경우 한국에서는 대표적인 3D업종으로 분류되지만 현지에서는 ‘꿈의 직장’으로 분류된다.

　현지에서 만난 상당수 젊은 사람들은 무조건 한국으로만 가면 돈을 번다. 결혼해서 잘 살수 있다는 환상이 주민들의 의식속에 은연중에 깔려있다. 얼마의 돈을 써서라도 한국으로 빨리만 보내달라는 이주자들이 줄을 설 정도이다. 바로 이런 심리를 노려 불법 브로커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한 필리핀인은 “불법 브로커에게 속아 여기저기서 빌린 200만원을 날렸다. 두달 안에 한국의 좋은 일자리를 소개시켜준다는 말에 혹했다”고 말했다. 또 “주변에 나와 같은 피해를 본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나 보다는 가족을 위한 희생정신이 이주노동과 해외 결혼을 선호하는 주요 원인이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차량으로 2시간 가량 떨어진 발렌쥬엘라시의 레드 아키노(55)씨. 아내와 2명의 딸, 막내 아들을 둔 아키노씨는 대전에서 일하고 있는 막내 아들의 지원으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다. 2003년 키보드 연주자로 밴드멤버와 함께 대전에 간 막내아들은 현재 불법체류 신세다. 계약기간이 끝나고 다른 멤버들은 다 귀국했지만 막내 아들은 홀로 남아 한국에서 돈을 벌고 있다.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한 아들의 희생정신이 그를 한국에 남겨둔 것.

　아버지 아키노씨는 96년 원양어선 일을 그만둔 뒤 무보수 지역경찰과 조그만 수퍼를 운영중이다. 생활비로 한달에 20여만원이 필요하지만 현재의 수입으론 힘든 상황. 막내 아들은 한달에 400달러를 보내기도 하지만 요즘같은 불경기에는 이 마저도 끊긴 상황.

　가족들은 그저 답답하기만 현실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문제는 불법 체류를 양산하는 송출비리가 근절돼야 한다는 것.

　정부간 협약(MOU)에 따르면 송출비리가 적발되면 송출을 중단하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송출 시스템을 투명하게 세우려는 노력은 이주 노동자를 빚더미에서 구해내는 일이다.

　김봉구 전국 외국인노동자 대책협의회 공동대표는 “우리나라의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수급정책이지 인권정책과는 거리가 멀다”며 “본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 노동자를 우리편으로 만드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제이주노동자기구(IOM) 마닐라사무소장인 브루스 리드는 “문화적 차이, 차별, 지나친 기대, 환상 등으로 현재 송출국, 도입국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필리핀 정부차원에서 이주화를 정규화시키는 기구를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패키지 투어 형태로 초고속 결혼이 진행되면서 국제결혼에서 빠른 시간안에 상대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서로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 보니 언어소통이 힘들고 사회·문화적 차이 등으로 한국생활에 적응이 힘들다. 국제결혼 문제 역시 제도와 의식이 함께 진보해야 한다.

　우리 국민의 인식 전환도 시급한 대목이다. 지난 93년 필리핀은 한국 배우자에 대한 사전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했지만 한국 남성들의 거부로 무산된 바 있다. 우리 국민들의 온누리안에 대한 인식전환이 서둘러져야 한다.

　다문화 가정은 우리의 이웃이다. 국제결혼율은 해마다 상승하고 있으며 전북지역은 전국 어느곳 보다 온누리안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

　최근 한 통계에 따르면 오는 2020년엔 신생아 3명 중 1명이 혼혈인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다문화 가정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당장 학교생활에서 따돌림과 놀림의 대상이 되지 않을 까 우려하고 있다.

　김철효 국제이주기구 한국사무소 과장은 “단일 민족주의와 인종차별적 요소를 없애기 위해서는 다문화교육이 정규교과 등에 들어가야 한다”며 “이주여성에 한국여성과 동등한 사회참여 보장과 일자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석진 한국산업인력공단 필리핀지사장은 “송출 근로자에 대한 부정알선 등이 만연하고 있어 필리핀 정부에서도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산업인력공단에서 한국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현지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없다 보니 막상 한국에 들어온 후 큰 혼란과 갈등을 빚고 있다”고 전제한 뒤 “공단 차원에서 교민과의 교류, 현지 관련기구와의 유대관계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국에 대한 교육, 홍보 등을 중점적으로 펼치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참가 인원과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며 “불법이주를 방지하고 고용허가를 통한 정식 루트를 다변화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 지사장은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에서 현지인의 해외 결혼, 취업이 증가하면서 피해 역시 막대한 실정이다”며 “한국, 필리핀 정부 관계자들과 앞으로도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고 설명했다.

장정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