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영업전략이 돌변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가계·기업 대출 확대를 통한 ‘덩치 키우기’에 열을 올렸으나 올 들어서는 고객을 세분화한 틈새상품 개발·판매에 ‘올인’하고 있다.

올해 대출 수요 감소와 성장성 둔화가 예상되는 만큼 상품 경쟁력을 앞세워 영업 전쟁에서 승리하겠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특히 타깃층도 20대 후반과 30대 여성, 대학생, 외국인 노동자, 어학 연수생 등으로 한층 다양해 지고 있다.

◆공략 대상을 세분화하라=29일 업계에 따르면 시중 은행들은 최근 신상품 개발에 고객관계관리(CRM)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성별이나 연령대, 직군, 취미 등 더욱 세분화한 특성별 고객층을 타깃으로 한 금융상품을 개발한다는 전략이다.

불은 국민은행이 먼저 지폈다. 이 은행이 지난해 9월 선보인 ‘명품 여성통장’은 지난 5일 은행권 상품으로는 최단 기간인 출시 71일 만에 판매고 2조원을 돌파하는 등 그야 말로 ‘불티나게’ 팔렸다.

이 상품은 경제 주도권을 쥔 여성을 겨냥해 야간 노상강도 피해에 대비한 보험가입 등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앞세웠다.

국민은행 특히 올해 신년 조직개편에서 마케팅·상품그룹을 신설했다. 상품개발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포석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올해는 결혼을 앞둔 20대 후반이나 결혼 후 자녀를 한 명 정도 둔 30대 초·중반의 ‘워킹맘’(일하는 여성) 등 연령대별로 상품을 더욱 세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하나은행은 지난해 7월 20∼30대 여성이 타깃인 ‘커피카드’에 이어 최근에는 30∼40대 맞벌이 여성을 공략한 ‘둘이 하나카드’를 선보였다.

◆대학생, 외국인에도 관심=‘미래 고객’인 대학생도 올해 은행권의 주공략 타깃이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12월 대학생 전용 상품인 ‘탑스 캠퍼스플랜 저축예금’을 내놨다. 학점과 토익·토플 등 어학 성적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청약 예·부금 가입 때 금리 우대와 현금 입출금기 수수료 면제 등의 혜택을 주는 상품이다.

하나은행은 3월 중순까지 학자금 대출 행사를 벌이고 있고, 한 시중은행은 아예 특정 대학 브랜드 통장으로 재학생과 동문을 유치하는 상품 출시를 검토 중이다.

100만명을 넘긴 국내 체류 외국인도 마찬가지. 외환은행은 외국인 노동자 밀집 지역인 서울 대림역, 안산 원곡동, 고양 대화역, 의정부 영업점포 문을 일요일에도 연다. 국내에서 받은 월급을 해외로 송금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환전·송금 서비스로 짭짤한 수수료 수입을 거둘 수 있기 때문. 우리은행도 이날부터 외국인 근로자가 인터넷을 통해 일년 365일, 하루 24시간 급여를 해외로 보낼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국민은행 변도연 팀장은 “은행 대출이 깐깐해지면서 대출 창구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라며 “은행 전략이 바뀜에 따라 대출 창구 직원에게도 신상품 판매와 함께 비이자수익을 올릴 수 있는 신용카드·방카쉬랑스·투신 상품 판매 부담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황현택 기자 larchid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