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0일부터 27일까지 17일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최하고 서울여성영화제와 당진문화원이 공동주관한 <이주여성이 만드는 여성영화 제작 워크숍: 이주여성이 직접 들려주는 영상이야기>가 열렸다. 당진지역의 여성 결혼이민자들이 참여한 이번 워크숍에서는 ‘영상일기’라는 컨셉으로 총 9편의 작품이 완성됐다. 17일간의 짧은 제작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엮어낸 덕분에 영화적 완성도를 떠나 자연스런 울림을 더해준 영화들이었다.

9회 서울여성영화제는 영화제기간 동안 이들이 제작한 작품들과 메이킹 영상을 ‘이주여성 특별전: 우리는 이곳에 살고 있다!’는 섹션을 통해 소개한다. 지금까지 이주여성들의 이야기가 바깥의 시선에 의해 동정적으로 그려졌다면, 이번 워크숍은 이주여성들이 자신들의 이야기와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계기가 됐다. 베트남, 필리핀, 중국 등에서 온 이주여성들은 낯선 문화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의 어려움뿐 아니라 자신들의 소박한 꿈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카메라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표현하고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을 마련한 의미 있는 순간들이 그들의 고민과 웃음 속에 훈훈하게 묻어난다. 이주 여성들이 영화에서 미처 다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은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즉석에서 들을 수 있다.

<멋진 그녀들> She is

2007 | 주현숙 | 한국 | 62분 | DV | 이주여성 특별전

<계속된다-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 등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주현숙 감독이 이주여성들의 목소리로 그녀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베트남의 띠엔은 19세에 62세의 한국인과 결혼한다.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그녀는 낯선 땅 한국에서 남편의 폭력과 강제 유산 등을 겪으며 고난의 시간을 보낸다. <멋진 그녀들>에서 주현숙 감독은 사적인 내레이션으로 국제결혼 알선업체의 횡포, 이주여성의 인권, 육아문제 등을 담담하게 펼쳐낸다. 영화제작 중 임신 중이었던 주현숙 감독은 임신이란 화두로 이주여성들의 삶에 한층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 이러한 친밀감을 바탕으로 가난과 폭력을 딛고 강인하게 자신의 삶을 일궈가는 이주여성들의 활기찬 면모가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겼다.

<노예비자> Maid for Sale

2006 | 디마 알-준디 | 프랑스/레바논 | 52분 | Digi-Beta | 이주여성 특별전

이주 가사노동의 문제를 다각도로 짚어낸 영화. 스리랑카 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레바논에 모여든다. 스리랑카 정부가 해외 이주 가사노동을 국책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결과다. 이들은 주로 한 달에 100달러 정도의 임금을 받고 가사노동자로 일한다. 현대판 노예제도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의 삶은 레바논에 도착한 순간부터 시작된다. 레바논에 입국하자마자 여권을 빼앗긴 이들은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신세가 돼 집안에 감금된 채 노예 같은 삶을 산다. 레바논 출신의 디마 알-준디 감독은 가사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스리랑카 여성들의 현대판 노예제도를 세 명의 스리랑카 여성과 다양한 전문가들의 입을 빌어 폭로한다. 국가와 가족을 위해 희생당한 여성들의 모습이 눈물겹다.

<모래 알갱이가 있는 풍경> View from a Grain of Sand

2006 | 미나 난지 | 미국 | 82분 | Digi-Beta | 제국과 여성

아프가니스탄은 여성인권의 불모지다. 미나 난지 감독은 자신들의 욕망을 차단당한 아프간 여성의 현재를 세 명의 아프간 여성의 눈으로 관찰한다. 전쟁으로 인해 더욱 더 억압적인 상황을 감내해야 했던 아프간 여성들의 아픔이 또 한 번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자히르 왕의 시대부터 현재 하미드 카르자이 정부에 이르기까지 아프간의 복잡한 역사의 기억들이 펼쳐지기도 한다. <모래 알갱이가 있는 풍경>은 의사, 교사 그리고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는 세 명의 아프간 여성에 대한 인터뷰가 중심이다. 여기에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아프간의 현재 상황이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교차된다. 자신들의 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해 지난한 싸움을 시작한 아프간 여성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나의 집은 너의 전장> My Home-Your War

2006 | 카일리 그레이 | 호주 | 52분 | Beta | 제국과 여성

이라크 전쟁을 여성의 관점에서 기록한 영화다. 카일리 그레이 감독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3년간 지내는 동안 이라크 여성인 라일라 하산과 친해진다. 라일라 하산과 그녀의 가족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낸 이 영화는 아주 사적인 이야기를 통해 공적인 역사를 불러들인다. 수많은 분쟁지역을 쫓아다녔던 카일리 그레이 감독은 자신이 겪었던 사적인 일들을 통해 중동의 역사를 은연중에 펼쳐낸다. 특히나 의미 없는 전쟁이 3세계 여성들에게 어떠한 상흔을 남겼는지 이라크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전한다. 자본, 군사, 정치적 우위를 바탕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제국의 힘이 폭력적인 남성의 세계와 어우러져 사회 내 소수자로서의 여성의 삶에 더욱 가혹한 시련을 안겨준다.
박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