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작성일 : 07-04-24 09:35
|
'쉬링' 혹은 '은정'…중국에서 온 한국어 선생님
|
 |
 조회 : 923
|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의 이주노동자 지원센터 푸른시민연대의 한 교실.
중국동포 허은정(34)씨의 열정적인 한국어 기초반 강의는 한국어와 중국어, 영어를 넘나든다.
갓 한국으로 들어왔거나 한국어를 거의 모르는 필리핀과 중국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을 가르치다 보니 손짓 발짓을 동원하기 일쑤이다.
허씨는 "어떻게 설명할까 늘 고민하다보면 땀이 난다.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된 분들이라 한국어는 거의 못한다. 아는 언어를 다 동원해서 설명하고 몸짓도 하고, 재밌다"라고 수업소감을 밝혔다.
허씨의 수업을 3주째 듣고 있는 필리핀인 버지니아(52)씨는 "한국에 온 지 6년 만에 한국어를 배울 기회를 갖게 돼 기쁘다"라며 찬찬히 한국어를 설명해주는 허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중국이름은 쉬링, 중국 흑룡강성 출신인 허씨가 처음 한국 땅을 밟아 허은정이란 이름을 쓰게 된 건 지난 2004년 12월.
사실 한국인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한족인 아버지와 중국동포 어머니 밑에서 자란 허씨에게 한국어는 낯선 언어에 불과했다.
중국 북경 대외무역대학을 졸업한 허씨는직장과 가족을 두고 남편을 따라 한국에 왔지만 대화도 안 통하는 낯선 땅에서 이방인의 서러움을 겪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말실수를 하면 웃음거리가 되는 것만 같아입을 떼지 못하고 지낸 적도 있었다.
그러던 허씨는 지난 2005년 3월 말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준다는 푸른시민연대를 소개받았고 이곳에서 한국어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의 소통과 나눔을 배울 수 있었다.
이곳 푸른시민연대에서는 필리핀, 중국, 방글라데시, 네팔 등에서 온 20여명의 노동자들과 10여명의 활동가들이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하며 한국어와 컴퓨터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끊임없는 노력끝에 한국인 못지않은 한국어 실력을 길러 지난해 9월 한국어능력시험에서 최고급 6급을 받은 허씨는 지난 3월 시민연대를 통해 자신이 받은 배움의 기쁨을 다시 나누기 위해 다른 외국인 노동자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는 일을 자원하고 나섰다.
'나눔'이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더욱 가치 있게 써 줄 누군가를 찾는 것이라고 말하는 허은정씨.
허씨와 같이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한국인 대학생 활동가들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허씨를 통해 늘 배우고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대학생 활동가 박국희씨는 “회원에서 활동가로 변신했는데 참 열심히 하고 같은 활동가가 봐도 배울 점이 많은 것 같다"라며, "은정씨는 직업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데 솔선수범한다”라고 칭찬했다.
한국어실력 덕분에 중국어를 가르치는 방문교사로 일하게 된 허씨는 주말이면 이곳 시민연대 활동가들을 위해 무료 중국어 교실을 열기도 했다.
3년 째 이곳 시민연대의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이연숙(27)씨는 "허씨가 착하고 편한 옆집 언니 같다"라며 “중국어를 가르칠 때 항상 학원 수업을 하듯이 일찍 나오고, 다른 활동가들은 개인적 사정으로 못나오는 경우도 많은데 허씨는 그런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힘이 닿는데까지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허씨.
아직도 한국어로 모든 감정을 다 표현하지 못해 답답할 때도 있지만 허씨는 시민연대에서 서로 친구도 되고 선생님도 될 수 있는 인격의 평등을 배운 만큼 묵묵히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고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허씨는 “서로 통하지 않지만 서로 한국어를 배우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예전에 이렇게 배웠구나 싶어서 너무 좋다"라면서,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충실하게 하며 내가 할 수 있는 한도에 도전하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시민연대의 한국어 고급반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계속 공부하고 있는 허씨를 보며 허씨와 같이 고급반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방글라데시인 손투(30)씨는 언젠간 자신도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은 ‘다름’과 ‘틀림’을 구별하는데 서툰 우리 사회.
중국동포라는 다름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을 더욱 잘 이해하고 배움을 나누는 허은정씨를 통해 다문화의 참의미를 새겨본다.
CBS사회부 강인영 기자 Kangin@cbs.co.kr
|
|
Total 6,589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