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외국어 실력과 봉사에 대한 열정으로 뭉친 아이들이 있다. 낯선 한국 땅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과 귀, 손과 발이 돼 주는 작은 천사들이다. 올해로 발족 4년을 맞는 서울시 청소년 자원봉사센터 외국어 봉사단원들이 10일 오후 경기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외국인 노동자의 집을 찾았다. 이들은 1주일에 한 번 무료 진료를 하는 의료진을 돕고 있다.

“진경아, 혈압약이 다 떨어졌는데 캐비닛에 있나 찾아봐 줄래. 민이는 진료기록부 먼저 챙기고.” 봉사단의 맏형 김병진(19·동북고3)군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진료시작 시간이 아직 30분이나 남았는데도 일찌감치 사람들이 밀려든 탓이다. 김군은 원래 외교관을 꿈꿨지만 진로까지 사회복지학으로 바꾸기로 했다. 다른 단원들도 기말고사 기간이지만 봉사에 나섰다.

“무릎은 좀 괜찮아지셨어요. 금방 나을 테니 걱정 마세요.”

임율아(16·삼각산중3)양이 3년째 당뇨합병증으로 고생하는 재중동포 이혜숙(41·여)씨에게 다가가 살갑게 말을 건넨다. 마주앉아 다리를 주무르고 손을 매만지는 모습이 모녀지간처럼 다정하다.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2년간 살다 온 율아는 중국어가 능통하다.

“한번은 귀 밑에 혹이 나서 무척 아파하던 중국분이 오셨어요. 우리말이 서툴러 일반병원에는 갈 생각을 못하셨죠. 제가 통역을 해서 치료를 받았는데 고맙다는 말을 못했다며 봉사활동이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시더라구요. 가슴이 찡했어요.”
진료소 한편에서 환자를 접수하고 있는 이민(16·대명중3)양에게 무하마드 후세인(30·방글라데시)씨가다가와 도움을 청했다.

심한 감기였다. 커서 문화인류학자가 되겠다는 이양은 “처음에는 영어실력을 활용해 보려고 봉사단에 가입했는데 이제는 누군가를 도울수 있다는 보람이 더 커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현재 40여명이 활동하고 있는 봉사단에는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는 국내파가 더 많다. 어학 실력만 믿고 우쭐대며 들어왔다가 한두달만에 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내년에 외국어고에 진학하는 권진경(16·해성여중3)양은 “외할머니가 중풍으로 앓아 누워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늘 병 수발 드는 모습을 보고 자랐어요”며 “고교생이 되면 지금보다 훨씬 바빠지겠지만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일만큼은 계속할 생각입니다”라고 했다.

봉사단을 지도하고 있는 박명수(27·여)씨는“중3 고1 학생이면 누구나 지원할수있지만 중요한 것은 어학실력보다 봉사하려는 마음가짐”이라며“외국에 살다온 자녀가 왜 봉사단 모집에서 떨어졌느냐는 서울 강남학부모들의 항의 전화를 받기도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한창 또래들과 재잘거리며 놀러 다닐 나이에 봉사활동이 힘들지는 않을까. 장윤진(18·성암여상2)양은 “내겐 봉사활동이 먼저”라며 “집에 가면 온몸이 녹초가 되지만 뭔가를 해냈다는 뿌듯한 느낌이 너무 좋아요”라고 자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