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한국에 시집 온 쯔엉(가명)씨는 얼마 전 합의이혼을 했다. 난소에 종양 의심이 있다는 진단에 “아기 못 낳으면 곤란하다”고 이혼을 요구받았다. 위자료 500만원을 들고 며칠 후 귀국 비행기를 타게 된다. 쯔엉씨를 돌봤던 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염 대표는 “그나마 위자료라도 준 건 상당히 양심적”이라고 혀를 찬다.

서울 성북구 정릉. 16일 이곳에 이주여성인권센터(www.wimigrant.org) 쉼터가 문을 연다. 규정 미달로 폐쇄 위기에 처했던 종로구 창신동 쉼터의 부활이다. 베트남에서, 중국에서, 몽골에서 온 외국인 아내들이 3만 명을 헤아리는 서울에서 단 하나뿐인 외국 여성 쉼터이기도 하다. “(결혼할 때 든) 돈 다 물어내라”고 시어머니가 내쫓은 조선족 여성은 길에서 울고 있다가 복덕방 아저씨의 안내로 이곳을 찾아왔다. 알코올 중독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던 일본인 아내도 아이 셋을 데리고 들어와 살고 있다.

한 대표는 여성 목사다. 외국인 여성 노동자를 위해 일하던 중 결혼 이주 여성의 참담한 실태에 눈떴다. 임금체불, 성희롱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그나마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적지 않은 결혼 이주 여성들이 가난과 폭력, 멸시, 고립 속에 살고 있었다. 한 대표는 친분 있는 교회의 도움으로 쉼터를 열고 이곳에 머무는 여성들의 밥값, 아기 우유 값은 실낱 같은 후원으로 버텨왔다.

그런 한 대표가 이번에 정릉 쉼터를 열며 1억3000만원이나 빚을 냈다. 대지 25평짜리 집을 2억1000만원에 가까스로 구했지만 창신동에서 전세금 뺀 돈 75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가 문제였다. 이주노동자 지원활동을 하는 어느 교회가 신용대출에 이름을 빌려줬다. 아파트 한 채에 몇 십 억씩 하는 게 그에겐 먼 나라 일만 같다. 누가 쉼터 비용을 후원해주면 쉼터에 기꺼이 그의 이름을 붙이겠다는 생각이다.

한국 남성과 외국 여성의 결혼은 2005년 3만1180건을 기록했다. 2년 만에 무려 60%나 늘었고 전국적으로 12만여 명을 헤아린다. 농촌 마을 분위기를 확 바꾼 베트남 며느리, 필리핀 신부들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 도시로 간 여성들의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이들과 결혼한 한국 남성의 52.9%가 최저빈곤층에 속해 있다. 이들의 결혼과, 결혼의 위기는 그렇게 한국 사회의 계층문제, 빈곤문제와 직접 닿아 있다. 인권센터와 쉼터를 찾아온 이들의 사연을 보면 과연 한국 사회가 ‘국제 가정’을 일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아이들이 한국말을 잘 못한다” “국제 전화요금이 너무 많이 나왔다” “비싼 ×이 제 구실도 못한다”는 이유로 남편이, 시집 식구들이 때리고 집에 가두고 친구도 못 만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결혼 10건 중 1건이 국제 결혼이었다. 베트남계 어머니, 몽골계 어머니, 필리핀계 어머니의 자녀들이 우리 이웃으로, 우리 사회의 주역으로 자라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 가정을 지원하고 위기를 관리할 정책은 허공에 떠있다. 폭력을 피해 집을 떠나고 싶어도 이들을 위한 쉼터는 전국에 5곳뿐. 지난해 가정폭력방지법 개정으로 비로소 외국인 여성쉼터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인가 규정에 급히 맞춰 집부터 구해야 했던 정릉 쉼터는 지원금을 꿈도 못 꿨다. 민간단체가 빚 얻어 쉼터를 마련하는 게 아직까지 우리의 ‘다문화’ 적응 수준이다.

[박선이 여성전문기자 sunnyp@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