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은 입국 초기 한결같이 자국 친구와 친척 도움이 없으면 주변을 벗어나기조차 힘들어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직장과 지원단체를 통해 자국인이나 한국인과 교류를 넓혀가고 일상 생활에 ‘여가와 종교 활동’ 등이 더해진다. 한국 말과 생활에 익숙한 이주노동자는 사회적 관계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기도 한다.

지난해 말 입국한 몽골인 투그소(24·이하 외국인 이름 가명)씨는 주말에도 일터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년 정도 일찍 입국한 고향 친구에게 모든 걸 의지하는데 그 친구가 최근 다리를 다쳤다.

투그소씨는 “말도 안 통하고 경험도 없어 어디를 가려 해도 겁부터 난다”고 말했다. 말이 서투르니 한국인 친구를 만들 엄두도 못 내고, 회식도 음식이 맞지 않아 피하기 일쑤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지원단체에서 고향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주말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입국 초기 이주노동자들은 모든 것이 낯설어 힘겨워한다. 이 시기에는 직장이나 지원단체로 활동반경이 극히 제한된다.

정보의 수용 단계인 이 시기를 지나 취업한 지 1년쯤 되면 일터를 중심으로 친구관계가 넓어지고, 각종 모임이나 단체에 참여하는 등 관계망이 점차 확장되는 ‘적응기’로 접어든다. ]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성당을 찾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성당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시기엔 기초적인 한국말을 익혀 혼자서도 웬만한 일은 할 수 있게 된다. 여가와 종교 활동에 관심을 갖고 다른 지역에서 일하는 자국인들을 만나기도 한다.

한국 생활 3년째인 베트남 노동자 황당빈씨는 경기도 포천의 한 기계 생산공장에서 일하는데, 주말이면 수원이나 김포, 안산 등지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낸다. 황씨가 친구 모임을 통해 지금의 직장으로 ‘스카우트’된 것처럼 좀 더 나은 근무환경을 찾아 능동적으로 직장을 옮기는 사례가 나타난다.

적응기를 넘어서면 이주노동자 네트워크에서 이주노동자 스스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참여기’에 접어든다.

입·출국을 거듭한 끝에 체류 17년차인 방글라데시 출신의 하안드(38)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의 일터는 공장이 아니라 경기도 한 지역의 외국인근로자센터다. 몇해 전까지 공장에서 일했으나 한국어에 능숙하다 보니 센터로부터 통역 일을 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인근 경찰의 조사과정에 통역으로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는 ‘3년’이라는 시간적 제한이 있다 보니 국제결혼 여성에 비해 관계망 형성에 한계를 드러냈다.

외국인 노동자가 사회 관계망을 확장하는 주요 공간인 이주노동자 단체가 자생적이지 않다는 점도 한 원인이다. 서로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 각종 정보를 주고받는 국가별 공동체의 활동성은 국내 지원단체와의 관계에 크게 좌우되고 있다.

최근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방송국과 노조가 생기는 등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으나 아직까지는 인간관계를 넓히고 정보를 주고받는 창구로서만 기능을 하고 있다. 그들 스스로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오래 생활하면서 경험이 풍부한 ‘리더’가 있어야 하지만 3년 체류 후 출국해야 하는 현실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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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 외국인근로자복지센터의 이영 신부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통로가 사실상 차단된 상황”이라면서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축적된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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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박희준 팀장, 이천종

·이우승·강구열·신미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