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강진권.송봉근 기자]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7시20분쯤 부산시 해운대 우동 시청자미디어센터 공연장. 무대가 열리자 아름다운 종소리가 관객을 반겼다. 혼혈인 등 15명의 어린이가 핸드벨로 '눈꽃송이' 등을 연주했다. 이어 운동복 차림의 11명이 태껸 품세를 선보인 뒤 5명의 어린이가 나와 호신술과 합기도 대련을 펼치자 관람석엔 탄성이 흘러나왔다. 14명으로 구성된 리코더 합주단이 '즐거운 나의 집' '루돌프 사슴코' '어머님 은혜'를 멋지게 연주하면서 발표회는 마무리됐다.

이들은 지난해 9월 부산에서 처음 문을 연 '코시안' 대안 초등학교인 '아시아공동체학교'의 1~4학년생들. 한국인(Korean)과 아시아인(Asian) 사이에서 태어난 코시안(Kosian) 6명과 한국인 7명, 외국인 노동자 자녀 2명 등 15명의 학생이 한 학기를 끝내면서 발표회를 한 것이다. 함수미(29) 교사는 "학생들이 실수하지 않을까 가슴을 졸였는데 기대보다 잘해 정말 대견스럽다"며 활짝 웃었다.

학생들은 지난 4개월 동안 국어.영어.수학, 예체능 등을 배웠다. 부산시 남구 문현동의 상가건물 2, 3층을 교실로 사용하는 이 학교의 교사는 모두 12명. 이 중 7명이 자원봉사자다. 국어.영어.수학.과학은 학년별로 진도를 나가고 미술과 음악.태껸 등은 자원봉사자가 맡아 공동 수업을 한다. 한국에 온 지 석 달밖에 안 된 베트남 출신 반 투이 티앤(4학년)은 한글을 전혀 몰라 이철호(45) 교장이 하루 한 시간씩 특별 지도를 했다. 덕분에 이젠 일상생활에 필요한 말은 대부분 익혔다. 지난해 10월 입학한 러시아인 릴리야(10.3학년)도 친구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한국말 실력이
늘었다.

4학년 담임 이희경(38) 교사는 "한국인과 외국인, 코시안이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면서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의 대연초등학교에 다니다 부모의 권유로 전학 온 박유빈(11.4년)양은 "우리말이 서툰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이 처음엔 답답했지만 다른 나라 문화를 조금씩이나마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인과 결혼해 낳은 아들과 딸을 이 학교에 보낸 네팔 출신 두루가(29)는 "아이들이 일반 학교에 다닐 때는 적응을 못해 속상했다"며 "방과 후 학부모도 영어와 한글을 배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방학 중에도 겨울학교(1월 3일~2월 28일)를 열어 코시안, 외국인 노동자 자녀 등에게 무료로 공부를 가르치고 학부모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아시아공동체학교는 그동안의 운영 성과를 인정받아 정부의 대안교육기관 재정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올해 2300만원을 지원받게 됐다.

◆아시아공동체학교=코시안들이 한국 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부산 지역 교수.교사.종교인 등이 지난해 9월 설립한 초등과정 대안학교. 하일민(66) 전 부산대 교수가 주도했다. 학생들은 1~4학년 과정의 국어.영어.수학 등 기본 과목과 미술.음악.태껸.공예 등을 무료로 배우며 다양한 한국문화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5명의 교사와 7명의 자원봉사자가 이들을 가르치며 후원금으로 운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