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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국내에서 딸을 출산한 아프리카 출신 여성 A씨(28)는 임신했을 때 병원 다닌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A씨는 각종 검사를 받기 위해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 거리에 있는 병원에 가야 했다. 건강보험 가입이 안 돼 집 근처 산부인과에서는 검사를 받기 어려웠다.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들어도 한 외국인노동자센터의 의료공제조합에서 지정한 병원에 갈 수밖에 없었다.
A씨 남편은 지난해 말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만약 A씨가 앞으로 둘째 아이를 가질 경우 건강보험 혜택을 받아 동네 병원에서 진찰받을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A씨는 “난민으로 인정되면 건강보험이 생기는지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또 “건강보험이 있다 해도 한달 수만원씩 내야 하면 차라리 기존 의료공제조합을 이용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난민 인정자에게 건강보험을 부여한다고 밝히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해 6월 “난민인정자의 경우 건강보험 가입이 되어 내국인과 동등한 처우를 받고 있다”고 밝혔으나 실태와는 거리가 멀었다. 취재팀의 면접조사 결과, 건강보험에 들었다는 난민은 53%(34명 중 18명)에 불과했다. 왜 이런 차이가 났을까.
한 난민 후견자는 “난민 인정 직후 건강보험이 생겼다가 생활고에 따른 연체로 인해 사용할 수 없게 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직장과 거주지를 이곳저곳 옮기다 보니 관리가 안 돼 쓸모없게 된다고도 한다. 일부 사업주가 비용 부담하기를 꺼려 직장이 있는데도 지역건강보험에 가입한 난민도 있다. 정부가 보험증만 내주고 사후관리를 하지 않는 사이 상당수 난민의 건강보험은 무용지물이 돼버린 셈이다.
난민보호 선진국은 난민 신청단계서부터 의료혜택을 주고 있다. 캐나다, 프랑스 등은 의료비 전액을 보장해줄 뿐 아니라 정신과 상담을 포함한 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웨덴은 난민신청자에게 치과진료까지 해주고 있다.
주거 혜택에서도 우리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캐나다는 임시숙소와 주거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프랑스는 난민수용시설에 들어가면 숙식을 해결해주고, 공영주택에 입주할 기회도 준다. 대출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도 많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난민들이 스스로 주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목돈이 없다보니 월세방에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일자리가 몰려있는 수도권에 주로 거주하므로 방세도 비싸다. 가족을 이루게 되면 주거에 지출하는 비용은 더 커진다. 면접조사에서 가장 시급히 지원해야 할 것으로 ‘주거지원’(14명)을 가장 많이 꼽은 이유도 난민들 대부분이 이처럼 좁고 비싼 곳에 살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 언어와 문화의 특수성으로 인해 적응이 어렵지만 관련 교육은 전무하다시피하다. 난민들은 대부분 책으로 독학하거나 직장 동료를 통해 한국말을 배운다. 한국문화는 TV 시청을 통한 것 외에 접해볼 기회가 거의 없다. 그래서 수년이 지나도 낯설다.
미얀마 난민 아웅 윈민(33)씨는 “한국 국회의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싶은데 신문을 읽으면 맥락을 몰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며 답답해했다. 한 여성 난민(32)은 최근 어지럼 증세를 느꼈으나 대부분 병원에서 영어 의사소통이 불가능해 치료비가 상대적으로 비싼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캐나다 등 일부 선진국가는 난민 인정자들에게 각 나라의 법과 관습, 날씨, 공공 교통수단, 교육제도, 응급상황시 대처요령 등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한다.
난민조약에 따라 난민을 내국인 대우 해줘야 하지만 존재가 생소하다보니 공공서비스 현장에서 소외되기 일쑤다. 한 이슬람 국가 출신 난민은 “본국에서 운전면허증이 있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주한대사관에 가서 확인을 받아오라는 말을 듣고 한참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난민에게 본국 대사관을 방문하라는 건 탈북자에게 북한대사관으로 가라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다.
난민에 대한 사회보장은 제도도 미비하지만, 현 제도를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게 더 큰 문제다. 인권위는 ‘난민 인권보호를 위한 정책개선에 대한 권고’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은 난민 지원이 가능한 것으로 해석되나 체계적 프로그램이 없어 관련 법령을 최대한 적용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된 난민은 3명뿐이다. 난민 스스로도 자신의 권리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난민 전문가들은 법무부에만 책임을 둘 것이 아니라 관계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난민 정착을 돕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복희 법무부 난민인정협의회 위원은 “미국 캐나다 등은 부처마다 난민 문제를 담당하는 조직을 따로 두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보건복지부, 노동부 등 관련부처가 일을 나눠 각 특성에 맞는 업무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