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오후 화성시 봉담읍 당하리‘컨테이너 북카페’에서 만난 이윤숙씨.
이 씨는 이곳 공장단지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이 공간을 만들었다./김우성 기자
조각가 이윤숙씨의 '내건너 창작마을'
젊은 후배들과 다양한 작품활동 펼쳐 "이주노동자에게 진정한 한국 알릴 터"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당하리는 공장단지로 빽빽한 곳이다. 그곳 한복판, 고속전철이 지나는 철로 밑에 언뜻 보면 다른 공장과 다를 바 없는 조립식 건물이 모여있는 곳이 있다. 그러나 '내건너 창작마을'이란 글씨가 쓰인 녹색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른 공장들과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곳곳에 조각품이 설치돼 있고 한 건물 내에선 최신가요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중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왼편에 마련된 '컨테이너 북카페'다. 회색 차가운 철조물 위에 귀여운 호랑이가 나무를 들고 손님을 반기는 이곳은 문화시설·도서관 등이 전혀 없는 당하리 내 유일한 문화쉼터다.
◆'내건너 창작마을'에서 이주노동자 위한 '컨테이너 북카페'까지
4일 오후 컨테이너 안에 들어서니 미술 전시회 팸플릿과 책들이 가득한 책장이 벽을 따라 서 있었고 마당을 향해 난 창 쪽엔 테이블이 네 개 놓여 있었다. 틈틈이 컨테이너 뒤 철로를 지나는 고속전철 소음에 땅이 흔들리는 듯했다.
작지만 정성이 깃든 이곳은 조각가 이윤숙(여·50)씨와 남편 김정집(50)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시작은 2006년 조성한 '내건너 창작마을'이었다. 98년부터 조각 활동을 하는 틈틈이 이곳에서 농사를 지어왔던 이씨는 조금이라도 넓은 장소로 집과 작업공간을 옮겼으면 하는 바람에 이곳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집이라고는 하지만 조립식 패널을 중고로 구입해 세운 것이라 외관은 다른 공장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무렵 남편 김씨가 옆에서 한마디 했다. "작업실 없어 힘든 사람들도 많을 텐데…" 이에 곧 이곳의 용도는 공동 창작스튜디오로 바뀌었다. 건물 두 개를 젊은 예술가들 10명에게 내주고 다른 한 건물은 세미나를 열거나 숙식을 해결하는 공간으로 바꿨다. 당하리의 옛이름을 따 이름도 '내건너 창작마을'이라고 붙였다.
마땅한 작업실을 찾기 힘들었던 젊은 예술가들은 환호했다. 이씨는 입주 조건으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이곳에 입주한 예술가 10명은 각자 주어진 공간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꾸몄고 때때로 마당에서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 둘 이들의 작품이 마당에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 공장에서 근무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내건너 창작마을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이씨는 평소 문화생활을 즐기기 힘든 이들을 위해 이곳을 공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러나 문제는 몇몇 예술가들이었다. 자신의 작품들을 전시회가 아닌 공간에서 공개하기를 부담스러워 했던 것. 심지어 어떤 이는 아예 담을 올리자는 의견도 냈다.
▲ 작년 12월 9일 문을 연 컨테이너 북카페. 중고로 산 컨테이너 내부를 북카페로 꾸몄다./김우성 기자
고민하던 이씨는 이들 모두를 배려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다 북카페를 생각해냈다. 예술가들의 작품공간도 확보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이 쉴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씨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경기문화재단으로부터 일부 후원을 받아 컨테이너를 중고로 샀고 근처 가구공장에서 가구를 얻어왔다. 내부장식은 이씨 후배들의 몫이었다. 그렇게 1년을 보냈고 '컨테이너 북카페'는 작년 12월 9일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운영할 것"
이씨는 이곳에 거주하는 작가들에게 '촌장'이라 불린다. 그만큼 이들을 보듬고 지역을 위해 봉사하려는 마음이 크다. 아닌 게 아니라 이씨와 김씨는 지난 2005년 김씨가 나고 자란 집이자 부부가 신혼생활을 했던 수원 팔달구 북수동에 있는 40여년 된 한옥을 지역 예술가들이 전시할 수 있는 갤러리로 바꾸기도 했다. 부부는 직접 페인트칠을 해가며 리모델링했고 이곳에 '대안공간 눈'이란 이름을 붙였다. 현재까지도 이들은 이곳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비로 운영하고 있다.
'컨테이너 북카페'는 이런 그들의 봉사정신이 예술가뿐이 아닌 지역주민에게까지 뻗은 결과물이다. 이를 위해 이씨는 작년 '내건너 창작마을' 2기 작가 8명을 모집할 때 아예 "무료로 혜택을 받는 대신 지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을 하나씩 담당하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씨는 "이제 하드웨어가 구축된 셈이고 앞으로 중고물품 장터나 한국어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이곳 문화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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